Or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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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파스타Orbit 2026. 8. 6. 00:16
“오빠가 맨날 파스타 먹여서 살쪘어. 오늘부터 다이어트다.” 스텔라는 제 옆구리를 손끝으로 붙잡아 보이며 제법 비장하게 선언했다. 실제로 잡힌 것이라고는 얇은 홈웨어 위로 간신히 집히는 살갗뿐이었으나, 그녀는 마치 지난 몇 달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돌이킬 수 없는 타락에 빠져든 사람처럼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이현은 소파 깊숙이 몸을 묻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손에 든 와인잔을 느리게 기울일 때마다 붉은 액체가 잔의 벽을 타고 끈질기게 흘러내렸다. 스텔라가 며칠 전 사다 놓은 향초에서는 그가 이름조차 외우지 못하는 꽃의 냄새가 났고, 낮게 깔린 재즈 음악은 주말 저녁의 관사를 지나치게 평화로운 공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네가? 다이어트를?” 목소리에 어린 의심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스텔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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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がきれいですね。Orbit 2026. 7. 31. 22:18
서이현이 밤중에 전화를 걸어온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적어도 그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무실에서 처리할 서류가 남아 있던 것도 아니었고, 다음 날 훈련에 관해 급히 전달해야 할 지시사항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관사 침실에 누워 한 시간 가까이 천장만 바라보다가 문득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고, 최근 통화목록의 가장 위가 아닌, 굳이 몇 칸 아래에 묻혀 있던 이름 하나를 찾아 눌렀다. 정스텔라. 연결음이 두 번을 채 넘기기도 전에 그녀가 전화를 받았을 때에는 오히려 먼저 당황한 쪽이 서이현이었다.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수화기 너머로 조심스럽게 들려온 “대위님?”이라는 목소리에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 잘못 걸었다며 끊을 수도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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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현의 복장 터지는 하루Orbit 2026. 7. 30. 21:16
서이현이 그날 일을 일찍 끝낸 것은 순전히 기분이 좋아서였다. 진급 심사에 올려둔 서류 하나가 예상보다 수월하게 통과되었고, 오전부터 사람 속을 뒤집어놓던 보고 건도 스텔라가 어디서 찾아왔는지 모를 규정 한 줄을 끌어다 붙인 덕분에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그녀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서이현이 저지른 일을 합법처럼 보이게 만들고, 그가 대충 던진 지시에서 정확한 의도를 건져내고, 다른 사람이라면 사흘은 붙들고 있을 일을 반나절 안에 끝낸 뒤 아무것도 아니라는 얼굴로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다음 일을 더 얹어주었을 것이다. 잘하는 사람에게 일이 몰리는 것은 당연했고, 스텔라는 자신이 시키는 일이면 무엇이든 해내는 인간이었으므로 굳이 아껴 써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웬일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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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Orbit 2026. 7. 29. 23:46
그날은 비가 왔다. 11월의 끝자락, 부대 뒤편 산자락에 걸린 먹구름이 저녁부터 굵은 빗줄기를 쏟아냈고, 연병장의 흙바닥은 진작 진창으로 변해 있었다. 하루 종일 낮게 깔려 있던 하늘이 끝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빗물은 사무실 창문을 쉼 없이 두드렸다. 퇴근 시간이 지난 지 한참이었으나 행정반의 형광등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스텔라는 마지막으로 수정한 보고서를 출력해 서이현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페이지 모서리는 정확히 맞춰져 있었고, 그가 붉은 펜으로 지적했던 항목은 한 글자도 빠짐없이 고쳐져 있었다. 서이현은 보고서를 넘겨보면서도 좀처럼 퇴근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틀린 곳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완벽했다. 정스텔라는 언제나 그랬다. 그가 무리한 지시를 내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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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Orbit 2026. 7. 29. 00:41
이전 이야기 : https://summer-wish.tistory.com/25 관사의 불빛은 복도 끝에서부터 희미하게 번져 나오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고, 부대는 진작 잠들어 있었다. 낮 동안 수없이 오가던 군화 소리도, 차량의 엔진음도, 훈련장에서 쏟아지던 고함도 모두 가라앉은 뒤였다. 형광등 몇 개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켜진 복도에는 정스텔라의 발소리만이 또렷하게 남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일정하고 흐트러짐 없는 보폭이었지만 손에 든 청색 파일의 모서리는 이미 여러 번 눌리고 펴진 흔적이 있었다. 보고서는 세 번째 수정본이었다. 첫 번째에는 문단 간격이 맞지 않는다고 했고, 두 번째에는 첨부 자료의 순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에는 서이현이 직접 지적한 사항을 빠짐없이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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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 첫 데이트Orbit 2026. 7. 28. 23:14
강남역 11번 출구 앞은 사람으로 넘쳐났다. 지하에서부터 한꺼번에 밀려 올라온 인파가 계단 끝에서 사방으로 흩어지고, 그 위로 건물 외벽에 부딪힌 한여름의 햇빛이 잘게 부서져 내렸다. 서이현은 출구에서 조금 비켜난 기둥에 한쪽 어깨를 기대고 서 있었다. 검은 슬랙스에 짙은 네이비 니트, 손목에는 평소 차던 시계, 목덜미에는 집을 나서기 직전 별생각 없이 뿌렸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킨 향수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군복이 아닌 옷을 입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생각보다 더 어색했다. 부하를 호출해놓고 기다리는 거라면 몇 시간이 지나도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다. 늦은 사람의 사유를 듣고, 필요하면 질책하고, 자신의 시간표에 맞춰 다음 명령을 내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기다리는 것은 정 소위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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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Orbit 2026. 7. 27. 14:01
아가타 쥰세이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그 눈동자도, 그 목소리도, 불현듯 고독의 그림자가 어리는 그 웃음진 얼굴도, 만약 어딘가에서 쥰세이가 죽는다면, 나는 아마 알 수 있으리라. 아무리 먼 곳이라도, 두 번 다시 만나는 일이 없어도…... - 그날 밤 집무실에는 이상하리만치 오래 남는 것들이 많았다. 형광등은 수명을 다해 가는 사람처럼 몇 분에 한 번씩 희미하게 떨었고, 세 번째로 식어버린 커피에서는 이미 향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창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유리창에 사무실 안쪽 풍경만 흐릿하게 비쳤다. 산처럼 쌓인 결재 서류와 모니터의 푸른 불빛, 벗어놓은 정모,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며 일을 처리하는 정스텔라의 뒷모습. 서이현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늦은 밤까지 부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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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엠바고Orbit 2026. 7. 26. 23:26
시부야역 하치코 출구를 빠져나오는 순간, 도쿄의 여름이 두 사람을 통째로 삼켰다. 개찰구 안쪽까지 끈질기게 따라붙던 냉방의 찬 기운은 자동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허망하게 끊겼고, 대신 뜨겁고 축축한 공기가 얼굴을 덮쳤다. 6월의 오후였다. 장마가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닌데 햇볕은 한여름처럼 사나웠고, 검게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로 희끗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전광판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광고 문구와 익숙한 글로벌 브랜드의 이름이 정신없이 교차했고, 횡단보도 앞에 모인 사람들은 신호가 바뀌기도 전부터 물결처럼 움직였다. 누군가의 향수 냄새, 길가 음식점에서 풍겨오는 기름 냄새, 지하철 입구에서 밀려나오는 서늘한 바람과 자동차의 배기가스가 한꺼번에 뒤섞였다. 낯선 도시가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은 대개..